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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퀴움

세종시대 간의대(簡儀臺)는 과학기술의 정수(精髓) 2011-11-23

  • Speaker : 이용삼 교수 (충북대학교)
  • Date : 2011-11-23 16:00 ~ 18:00
  • Location :
세종은 독자적으로 한양을 중심으로 한 자주적인 역(曆)을 편찬하도록 했다. 역을 편찬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태양, 달, 오행성, 항성들의 위치를 관측하고 또한 정밀한 시간을 측정해 하늘의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해 내는 것이다. 세종은 1432년부터 본격적인 천문기기 제작을 시작했는데 이는 주로 이천과 천재 기술자 장영실이 맡았다. 특별히 천문기기 제작은 고대의 이상적인 성군(聖君)으로 성왕(聖王)이라 추앙받는 요(堯)와 순(舜) 임금이 했듯이 단지 천문학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제왕 된 자가‘하늘을 받드는 정치’를 함에 무엇보다 먼저 앞서서 행해야할 중요한 사안으로 태평성대를 이룬 요순의 뜻을 받드는 옛 제도(古制)를 처음 회복한 것이다. 드디어 1433년 경복궁 안에 높이 9.4m 길이 14.4m의 거대한 천문대인 간의대(簡儀臺)를 세우고 청동을 부어 간의(簡儀)를 만들어 설치했다. 간의대 서편에는 24기(氣, 절기)를 측정하는 높이 8m 길이 25m의 규표를 설치했다. 세종은 종합 천문대인 간의대 주변에 간의의 구조와 기능을 개선하여 조선의 실정에 맞게 다목적 기능의 소형의 각종 관측기기인 소간의, 일성정시의와 앙부일구, 현주일구 등 각종 해시계를 창제하였다. 그 외에도 혼의혼상(혼천의와 천구의)각과 자격루와 옥루 등의 자동화를 구현하는 첨단적인 시설을 갖추어 실로 경복궁을 조선의 첨단 과학기술의 연구 시설을 만들었다. 세종 시대 간의대를 비롯한 천문시설들의 창제품들은 당대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오늘날 인정받고 있다. 15세기 조선의 천문학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것은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적극적인 지원과 축적된 전통과학 기술, 창조적 재능을 지닌 학자와 장영실 같은 기술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 당시 제작한 천문의기들 중 현존하는 유물은 단 하나도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최근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설계와 작동모델의 복원연구를 통해 다수 복원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적인 창제물인 옥루와 혼의혼상각 등 주요 유물들은 연구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지금까지 수행한 복원연구를 통해 세종시대 천문의기의 특성과 앞으로 복원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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